고려 (高麗) 현종(顯宗)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역임하였는데 그는 역학(易學)과 술수(術數)에 정통하여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그의 도참설(圖讖設)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시조 진함조(시호는 문경)는 어려서 부터 총명하고 장년해서도 문장과 천문 등에 뛰어나 고려 현종이 사부로 예우하고 호부상서에 등용하여 뒤에
좌복야 겸 도정상서 좌복야를 역임하였다. 현종은 또한 진씨 성과 함조라는 이름을 하사 하였다.
진씨 (晋氏)는 중국(中國) 괵군( 郡
: 지금의 하남성 하락도)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 당(唐)나라 희종(僖宗)
때 사람인 진휘자(晋暉者)의 후손으로 전한다. 시조 이후 고려 고종조(高宗朝)에
와서 후손(後孫) 석(錫)이 거란군의 침입을 토평하는데 공(功)을 세워 남원군(南原君)에
봉해지고 남원(南原)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아 후손들이 그곳에서
정착세거(定着世居)하면서 남원(南原)을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남원 (南原)은 전라북도 남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고룡군인데 후에 대방군으로 고쳤고, 신라 경덕왕때 남원소경으로
개칭하였다.
고려 태조조에 남원부로 삼았다가 다시 대방군으로 하였으며, 후에 남원군으로 고치고, 739년 일신현으로 하였고, 1895년(고종 32) 남원군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고려 말에 집현전 학사를
지낸 우란 (于蘭)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벼슬을 버리고 두류산에
은거하여 끝까지 절의를 지켰으며, 선조때 좌승지로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倡義)한
벽(壁)은 여러곳에서 왜군을 맞아 싸워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후 금산 전투에서
순절하여 크게 이름을 떨쳤다.
한편 인조때 무과에 급제한 종립(宗立)은 병자호란때 전라도 병마절도사 김준용의 휘하에서 수원 광교 전투에 참전하여 적장을 사살하고 통정대부에
올랐으며, 창복(昌復)은 박사를 지내 가문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