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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뿌리 > 성씨의 유래 
「파릉호(胡)
호극기 (胡克己)
시조 호극기는 중국 건녕부인 호견의 원손으로 명나라의 한림학사이며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왔다가 명나라가 망하자 귀국하지 않고 가평에서 살다가 함경북도 북청에 정착하여 살았다 . 후손들이 시조의 고향인 파릉을 본관으로 하였다
파릉 (巴陵)은 악양의 옛 지명으로, 중국 호남성 북동 끝에 있는 악양 지구의 현공서 소재지이다. 동정호의 물이 양자강으로 흘러나가는 출구에 위치하여 양자강의 수운과 경광철도 육운이 겹쳐 있어서 호남성의 관문 구실을 한다
파릉호씨 (巴陵胡氏)는 중국 안정에서 계출된 성씨로서, 송나라 때 사람인 호안국(胡安國)의 16세손 호극기(胡克己)를 시조로 하고 있다.
문헌에 의하면 극기(克己)는 명나라 말엽에 과거에 급제하여 한림학사에 올라 1643년(인조 21) 답례사(答禮使)로 우리나라에 왔다가 명나라가 청나라에 멸망되자 "내가 천조(天朝)에 복명치 못하고, 조종(祖宗)의 땅이 전란에 짓밝히니 창천도 무심하다.
차라리 동해에서 죽을지언정 고국에는 돌아가지 않으리라"하고 경기도 가평군 대명연에 은거했다가, 함경도 북청군 덕성면 중장내에 초가를 지어 '치암우(恥菴禹)'라 이름짓고 여생을 보내니, 조선의 효종이 그의 충성심을 높이 치하하고 그 지방의 조세로 녹(祿)을 삼게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극기의 본향지인 중국 파릉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역사상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극기(克己)의 맏아들 제백(濟伯)이 학자로 문명이 높았고, 후손 사룡(士龍)은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올라, 녹사(綠事)를 지낸 태기(泰起), 충찬위(忠贊衛)에 오른 시악(時악)과 함께 명망높은 가문을 더욱 유명하게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파릉호씨(巴陵胡氏)는 남한에 총 194가구, 76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황해도 장연군 . 송화군. 봉산군. 평산군 일원

함남 북청군 북청읍 일원
본관은 파릉 (巴陵) 등 7,8본이 전한다.
파릉호씨의 시조는 송나라 때 사람인 호안국(胡安國)의 15세손 호사표(胡士表:한림학사 · 이부상서 )의 아들 극기(克己)이다.
그는 명나라 말기에 한림학사가 되어 조선 인조 21년에 답례사(答禮使)로 조선에 왔다가, 이듬해 명나라가 청나라에 망하자 귀국하지 않고 조선에 머물렀다.
그의 후손으로는 두필(斗弼) · 수빈 (秀彬) 등이 있으나, 조선시대의 서북인(西北人)에 대한 불기용(不起用) 정책 때문에 중앙정계에 두각을 나타낸 사람은 없다.
한편, 송나라 복주(福州) 사람으로 상선을 타고 고려에 왔다가 귀화한 종단(宗旦)의 후손 일파가 있는 것으로 전한다.
그는 예종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는데, 풍수(風水)의 대가로서 지압술(地壓術)에 능하여 많은 전설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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