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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고(高)「연안고(高)「용담고(高)「임실고(高)「장흥고(高)「제주고(高)「회령고(高)
복림
고을라의 45세손인 말로의 10세손 복림
전라남도의 남쪽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 원래는 백제의 오차현(烏次縣)인데 신라 때 오아(烏兒)로 개칭되어 보성군에 속해 있다가 고려 때 영암(靈岩)에 소속되고, 인종(仁宗) 때 장흥부(長興府)로 승격되었다. 1265년(인종 6)에 회주목(懷州牧)으로 승격되었다가 1310년(충선왕 2)에 다시 장흥부가 되었다. 그 이후 많은 변천을 거쳐 1895년에 장흥군이 되었다. 1914년 부 · 군 · 면 폐합에 따라 웅치 (熊峙) · 회천 (會泉) 2개면이 보성군에 이관되었으며, 1936년 부동면(府東面)을 장흥면으로 개칭하고, 남상(南上) · 남하 (南下) 양면을 용산면(蓉山面)으로, 고읍면(古邑面)을 관산면(冠山面)으로 개칭하였다. 1942년 장흥면이 장흥읍으로 승격하고, 1980년 관산면이 관산읍으로, 대덕면이 대덕읍으로 승격하였다.
고씨 가운데서 특히 장흥고씨가 알려져 있는데 , 그 중에서도 전남 담양군 창평(昌平) 일대에 사는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의 후손이 유명하여 전남 지방에서는 이 일문(一門)을 창평고씨라 하며, 이를 호남사족(湖南四族)의 하나로 꼽고 있다.
경명의 조부 운(雲)은 화가로 알려진 문신(文臣)으로 형조좌랑(刑曹左郞)을 지내고, 조광조(趙光祖) 등과 친교를 맺어 을묘사화(乙卯士禍)에 연루되었으며, 그의 아버지 맹영(孟英)은 명종 때 대사간(大司諫)을 지냈다. 경명은 옥당(玉堂) 등 벼슬을 지낸 유학자이며, 동래부사(東萊府使)로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였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장흥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 6,000을 이끌고 금산(錦山)에 침입한 왜군을 맞아 싸우다가 그의 둘째 아들 인후(因厚)와 함께 전사하였다.
그의 장자 종후(從厚)도 임피현감(臨陂縣監)으로 있다가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 방어전에 참가, 김천일(金千鎰) · 최경회 (崔慶會)와 함께 전사하니, 이들 3인을 가리켜 ‘ 진주 3장사 ' 라 하였다 .
선조는 경명에게 충렬공(忠烈公), 종후에게 효열공(孝烈公), 인후에게 의열공(毅烈公)이란 시호를 내렸다.
경명의 셋째 아들 용후(用厚)는 판결사(判決事)에 이르렀는데, 문인으로서 이름이 높았다. 이 밖에 숙종 때의 학자 관란재(觀瀾齋) 회(晦)도 장흥고씨이다.

고씨는 조선시대에 총 77명의 문과급제자를 배출하였는데, 이 중 장흥이 29명, 제주가 28명, 개성이 8명이었다.
  1960년도 국세조사에서는 4만 2676가구에 인구 23만 3311명이었는데 이 중 전남이 4만여 명, 전북이 3만 2000여 명, 제주 2만 7000여 명, 경기 2만 4000여 명, 서울 2만 3000여 명이었다. 85년도 조사에서는 9만 1384가구로 전국 가구 구성비 0.9 %, 순위는 274성 중 22위였다.

장흥 고(高) 씨는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19,316 가구에 61,626 명으로 성씨내의 순위는 2 위이며 전체 본관별 인구 순위는 120 위이며, 고(高) 씨는 135,488 가구에 435,839 명으로 전체 성씨 순위는 22 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    고씨중앙종문회    02-755-0919    서울 -용산-용산동5-1...   
제주    제주고씨영곡공파대종보위원회    02-797-4631    서울 -용산-용산동5-1-13   
고    고씨부산종문회    051-631-8660    부산 -동-범일5-547   
고씨    고씨광주종문회    062-525-9585    광주 -북-임-94...(대림빌딩5층)   
장흥    장흥고씨만경당종중    062-676-3999    광주 -남-진월-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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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명 (高敬命)

[1533 ∼ 1592]

조선 중기의 문인 · 의병장 .
자 이순(而順). 호 제봉(霽峰) · 태헌 (苔軒). 시호 충렬(忠烈).

1552년(명종 7)에 진사가 되었으며, 1558년에(명종 13) 식년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호조좌랑에 기용되었다가 전적(典籍)ㆍ정언(正言)을 거쳐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1563년 인순왕후(仁順王后)의 외숙 이조판서 이량(李樑)의 전횡을 논할 때 교리(校理)로서 이에 참여하였다가 그 경위를 이량에게 알려준 사실이 발각되어, 울산군수로 좌천된 뒤 파면되었다.
1581년(선조 14) 영암군수로 다시 기용되고, 이어 종계변무주청사(宗系辨誣奏請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91년 동래부사로 있다가 서인(西人)이 제거될 때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光州)에서 모집한 의병 6천여 명을 이끌고 금산(錦山)싸움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광주의 표충사(表忠祠), 금산의 성곡서원(星谷書院) · 종용사 (從容祠), 순창(淳昌)의 화산서원(花山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
<제봉집>
<유서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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