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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뿌리 > 성씨의 유래 
「남양전(田) 「담양전(田) 「연안전(田) 「영광전(田) 「하음전(田)

휘 (諱): 전종회(田宗會), 충원공(忠元公)
일세조 휘(諱): 전 개(田 漑), 첨사(詹事)
   자(字): 의성(義城), 호(號): 성암(省庵)

영광 (靈光)은 전라남도 북서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원래 백제 때 무호이군(武戶伊郡) 이었는데 통일신라 때인 757년(경덕왕 16)에 무령군(武靈郡), 995년(고려 성종 14)에 영광군(靈光郡)이라 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강남도(江南道: 현 전북)와 해양도(海陽道: 현 전남)를 통합, 전라도라 개칭했는데 이 때 영광군이 전라도 관할로 되었으며 그 후 현으로 강등, 군으로 복귀하기를 몇 차례 거듭하였다. 1896년(조선 고종 33)에 전국을 13도로 개편할 때 전라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영광 전씨는 왕건 (王建)의 수하에서 무공을 세우고 고려 창업을 도와 개국공신에 책록된 전종회(田宗會)를 시조로 하고 있으나, 계대(系代)가 실전되어 첨사(諂事)를 지낸 전 개(田 漑)를 일세조로 하고 관향을 영광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그 후 고려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한 공지(珙之)는 목종 때 태학 박사(太學博士)를 지내고 탐라의 지형도를 그려 바쳤으며, 현종조에서 중추원 부사(中樞院府使)로 치사(致仕)하였다.
 한편 창령(倉令)을 지낸 덕보(德普)는 개(漑)의 아들이며, 덕보의 손자 지렴(志廉)은 승려로서 정인선사(正印禪師)가 되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영광 전씨는 남한에 총 394가구, 1,84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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