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세 (家勢)를 일으킨 인맥(人脈)을 살펴보면 시조 신경(臣敬)의 아들 연(璉)이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거쳐 병부전서(兵部典書)에 올랐으며, 조선이 개국된 후 청양 현 감(靑陽縣監)으로 나가 선정(善政)을 베풀고 청렴결백하게 정사(政事)를 처리하여 주민들에 의해 선정비(善政碑)가 세워졌고, 그의 아들 수중(守中)은 세종(世宗)때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兵曹佐郞) 겸 부지승문원사(副知承文院事)에 올랐다. 1480년(성종 11) 김굉필(金宏弼)·안 당(安)·송 흠(宋 欽)·류순정(柳順汀)등과 동방(同 )으로 사마양시(司馬兩試)에 합격했던 함( :승문원사 수종의 아들)은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전주 판관(全州判官)을 지냈으나 연산군(燕山君)이 즉위하여 폭정이 날로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돌아와 자녀교육에 힘쓰는 한편, 향유(鄕儒)들과 시문(詩文)으로 소일하다가 박원종(朴元宗)·류순정(柳順汀)·성희안(成希顔) 등과 더불어 중종반정(中宗反正)에 공을 세워 정국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오른 곤( )과 아들 정렴(廷濂:주부·중추부사를 역임)·정수(廷:군자감정) 3부자는 임진왜란 때 용만(龍灣)으로 파천하는 선조(宣祖)를 호종(扈從)하고 의곡(義穀)을 모아 행재소(行在所)로 보내니 왕이 그의 충의(忠義)를 가상히 여겨 벼슬을 내려 치하했다.
그외 통정대부 (通政大夫) 언관(彦寬)의 아들 의가 봉직랑(奉直郞)으로 사재감 첨정(司宰監僉正)을 지냈으며, 손자 정빙(廷聘)은 군자감 판관(軍資監判官)을 역임하여 평구 찰방(平丘察訪)을 지낸 준(晙)과 함께 이름을 떨쳤다. 곤의 6세손 익채(益彩: 사도의 아들)는 영
조 (英祖) 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거쳐 대정(大靜: 제주) 현감으로 나가 선정(善政)을 베풀어서 주민들이 그의 덕치(德治)를 노래불렀다고 하며, 철환(喆煥)의 아들 기협(基協)과 중현(重鉉)의 아들 일수(一洙)는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용양위 부호군(龍 衛副護軍)을 역임하여 효성(孝誠)으로 명망이 높았던 근홍(根洪:래수의 아들)과 함께 문경 송씨의 가통(家統)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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