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오광휘는 도시조 오첨의 24세손
오현필(보성 오씨의 시조)의 넷째 아들이다. 오광휘는 고려말에 문과에 장원하고
상서성 좌복야를 거쳐 흥위위상장군으로 삼척 울진에 출몰했던 외적을 토평한
공으로 추충정난광국공신에 서훈되고 함양부원군에 봉해 졌으므로 보성 오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함양으로 하였다.
함양 오씨 (咸陽吳氏)의 시조(始祖)
오광휘(吳光輝)는 고려(高麗) 때 문과(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좌복야(左僕射)를
지냈고 명종조(明宗朝)에 흥위위 상장군(興威衛上將軍)으로 명주(溟州)에 출몰한
외적(外敵)을 격퇴시킨 공(功)으로 추충정란광국일등공신(推忠靖亂匡國一等功臣)에
책록(策錄) 되었으며, 이어 삼중대광(三重大匡)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오르고 함양부원군(咸陽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보성오씨(寶城吳氏)에서
분적(分籍)하여 본관(本貫)을 함양(咸陽)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경상남도 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신라 (新羅)의 속함군(速含郡)인데 경덕왕(景德王)이 천령군(天嶺郡)으로
고치고 고려 현종(顯宗)때 함양군(咸陽郡)이 되어 합주(陜州 : 합천)에
속하였다가 함(含)을 함(咸)으로 고쳐서 함양(咸陽)이 되었다. 1172년(명종
2) 함양현(咸陽縣)으로 강등되었으며 조선 태조 때 군(郡)이 되었고, 1914년
안의군(安義郡)의 7개면을 병합하고 1957년에는 석복면(席卜面)을 함양면에
이속시켜 함양읍으로 승격시켰다.
홍예 (洪芮)가 정의대부에 올라 함양군에
봉해졌으며, 손자 유(裕)가 호부 상서를, 증손 세룡(世龍)이 조선때 대사성을
역임하였다
또한 세룡의 아들 중원(仲元)이 이조판서를 지냈고, 손자 엄(儼)이 대사헌과 충청도 관찰사를 역임하여 대를 이어 가문을 중흥시켰다.
이외에도 예종때 한성부 좌윤과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치인(致仁)의아들 응(凝)과, 춘추관 기사관으로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한 세기(世紀)의
아들 건(健), 임진왜란때 의병으로 활약하여 전공을 세운 사운(思雲)의 아들 빈(玭)과 건(健)의 아들 장(長) 등이 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함양오씨(咸陽吳氏)는 남한에 총 5,354가구,
22,158명이 살고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 영양군 영양면 대천동
경남 진양군 미천면 상미리
황해도 송화군 운유면 다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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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는 문헌에 164~210본이 있으나
16본을 제외한 나머지의 유래와 시조는 알 수가 없다.
오씨 성의 기원은 고대 중국 양자강 부근 오나라에 차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손자 류양이 천자로 부터 오씨성을 하사 받고 오나라의 왕이 되어
이때부터 오씨가 생겼다.
우리나라 모든 오씨의 도시조는 류양의 46세손이며 500년(신라 지증왕 1년)에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온 오첨(吳瞻)으로서 그는 함양에서
22년간 살다가 다시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때 두아들 중에 둘째 아들 오응이 그대로 함양에 남아서 살았다고 한다. 그후 오응의 12대손 오광우가
다시 중국에 들어가 살았는데 후손 오연총(吳延寵, 오첨의 18세손)이 고려 문종 30년에 다시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착하여 살면서 우리나라
오씨의 중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오연총의 6세손 오수권(吳守權)이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1216년(고려 고종 3년) 계단을 토평한공으로
큰아들 오현보(吳賢輔)는 해주군에 봉해져서 해주 오씨의 시조가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