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高麗) 때 공(功)을 세워 순성보절좌리공신(純誠輔絶佐理功臣)에
녹훈되고, 금자광록 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라 보안백(保安伯)에 봉해졌다.
부안 임씨 (扶安林氏)는
고려(高麗) 초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평원부원군(平原府院君)에 봉해진 임계미(林季美)의 9세손 임 숙(林 淑)이
고려(高麗) 때 공(功)을 세워 순성보절좌리공신(純誠輔絶佐理功臣)에 녹훈되고,
금자광록 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라 보안백(保安伯)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중시조(中始祖)로 하고 본관(本貫)을 부안(扶安)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고려(高麗) 때 제주 안무사(濟州按撫使)를 역임한 희재(熙載)는
숙의 아들이고, 대선(大先)은 대광보국 숭록대부(大匡輔國崇錄大夫)에 올랐으며
손자 창무(昌茂)가 상서(尙書)를 득귀(得貴)가 판서(判書) 를 역임하여
가문(家門)의 기틀을 다졌다.
부안 (扶安)은 전라북도 남서부 변산반도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부령(扶寧),보안(保安)의 합명이다. 부령은 본래 백제의
개화현 또는 계발현이었는데, 통일신라 경덕왕이 부령으로 고쳐 고부군에 편입시켰고
1416년 보안을 병합하여 부안으로 고쳤다.
고려때 제주 안무사를 역임한 희재 (熙載)는
숙의 아들이고, 대선(大先)은 대광보국숭록대부에 올랐으며, 손자 창무(昌茂)가
상서를, 득귀(得貴)가 판서를 역임하여 가문의 기틀을 다졌다. 이 외에도
효생(孝生)은 자헌대부로 병조참판을 지냈으며, 경상도관찰사에 오른 유(宥),
공조전서를 역임한 난수(蘭秀) 등과 함께 덕망높은 학자로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부안임씨(扶安林氏)는 남한에 총 11,543가구, 48,04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