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임씨 (益山林氏)는 당(唐)나라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내고 신라(新羅)에 들어와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역임한 후 평택(平澤) 용포리(龍浦里)에 정착 세거(定着世居)한 임팔급(林八及)의 후손 임 완(林 完)을 시조(始祖)로 받들고 있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송(宋)나라에서 고려에 귀화하여 1114년(예종 9) 문과에 급제하고 예부 원외랑(禮部員外郞)을 지냈으며, 인종(仁宗) 때 수창궁(壽昌宮) 옆에 서적소(書籍所)를 설치하자 김부식(金富軾) 등과 함께 고문이 되었으며, 이어 국자사업(國子司業)·지제고(知制誥)가 되었다. 그 후 후손들이 익산(益山)에 살면서 평택에서 분적(分籍)하여 익산(益山)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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